팩트 팩트폭격 이라는 단어에 대한 고찰
이기적 유전자 중 '어떤 진실이 진실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 진실을 되돌릴 수는 없다.' 라는 구절이 있다. 팩트폭격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건내는 제일 담백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팩폭에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가끔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정말 미성숙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그 현실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현실을 기피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받아드려지기 때문이다.
이런 '팩트를 받아드리지 못하는 사람' 중에도 단계가 있다.
- 1단계 : 스스로 인지하고 그 현상을 고치려 노력하나 높은 수준에서는 벗어나진 못함(주위에서도 노력하는 사실을 인지함)
- 2단계 : 스스로 인지는 하고 있으나 노력이 부족하고 핑계거리를 찾음(의지박약 및 자기합리화)
- 3단계 : 현실부정(모두가 알고 있으나 스스로 부정)
- 4단계 : 자기에게 하는 모든 부정적인 말을 듣지 못함(자신이 법이며 신 그 자체, 왠만해서는 어른이 되어서 찾아보기 힘케이스. 간혹 9시 뉴스나 sns를 뜨겁게 달구는 사건에 종종 등장함)
또한, 반대로 '팩트를 받아드리는 사람' 중에도 단계가 있다.(해당 경우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서 간략히 적음)
- 이겨냄 형 : 스스로 인지하고 그 현상을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벗어남
- 해탈 형 : 스스로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나 현상을 이겨내고 싶은 마음이 없음. 스스로 해당 현상을 개그 소재로 사용.
물론 팩트를 말할 때에도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첫째, 팩트를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비난의 의도가 섞인 경우. 둘째, 많은이들이 있는 앞에서(단톡방 등) 팩트를 전달하는 경우. 생각나는 건 이정도이다. 팩트가 비난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는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고, 많은이들 앞에서 팩트를 전달하는 경우에는 의도와 다르게 상대방에게 수치심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두가지 경우를 제외하고(그밖에 적절치 못한 팩트를 전달하는 경우 포함) 팩트를 전달했을 때 팩트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감정을 지닌다면 그 사람은 앞서 말했듯이 미성숙한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팩트를 받아드리지 못하는 사람에는 (생각나기에)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과학적 지식 부족의 원인, 둘째, 자기 객관화 부족의 원인이다.
첫째, 과학적 지식 부족형은 보통 어린아이에게 발생하며, 어른이 되어서도 과학적 지식 부족하며 연역적, 귀납적 사고 자체를 하지 않고, 감성(망상)에 빠져사는 사람들 중에도 나타난다. 제일 대표적인 예가 산타의 존재 유무에 관해서이다. 어린아이들은 실제로 산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아직 세상을 많이 모를때이고 그만큼 순수하기 때문이다. 허나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 산타의 존재를 믿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다. 또한 ,그 사람에게 산타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을 했을 때 크게 부정(경기를 잃으킴 등)하는 사람이 있다면, 보통의 사람들은 그 사람이 쉽게 받아드려지지 않을 것이다.(그 사람은 멀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모든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다니려면 그 산타의 수와 루돌프의 속도는 과학적 범위 내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 과학적 지식이 부족하여 나타나는 예는 인터넷에 떠도는 짤로 설명이 된다. 자동차의 내부순환 버튼을 눌러놓고, 자동차가 유턴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그 예이다. 요즘 시대가 되서는 AI를 접목한 자동차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자동차가 나올 수 있다고는 보지만, 이 사건은 자율주행차가 존재하기 전 꽤나 예전에 나온 이야기이다. 또한, 연잎 위에 올라가려고 점프하여 물에 풍덩 빠지는 사람, 위험천만한 위치에서 인생 셀카를 남기려다가 사망하는 사람 등등 유튜브를 조그만 봐도 수두룩 하다.
사실 과학적 지식 부족형은 이번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과는 먼 범주의 이야기이다. 얘기하고자 하는 메인 주제는 자기 객관화 부족형이다. 자기 객관화 부족으로 인해 일어나는 화는 사소한 것부터 인생 전체를 말아먹을 정도로 다양하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단어인 '너 뭐 돼?'라는 단어가 나온 이유도 자기 객관화의 부족으로 생긴 유행어 중 하나이다. 자기가 처한 현실과 다르게 과소비를 하거나, 남들에게 요구를 하거나, 어떤 무리에서 나서다가 분위기를 헤치는 등의 행동을 하게 된다. 남자 중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카푸어가 아닐까 싶다. 남들이 타는 멋진 차는 갖고 싶은데 현실은 직장과 모은 돈이 변변치 않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레전드 글을 보면 차를 사기 위해 무리한 대출을 하여 그 돈을 갚지도 못하고, 이자를 갚는데에 자신이 번 돈의 반 이상을 쓰는 사람도 많다. 이 얼마나 아둔한 사람인가. 이정도로 자기객관화가 되지 않아 욕심에 눈이 멀어 위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여자의 경우는 옷과 핸드백을 무리하게 많이 사람들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SNS를 보면 다들 이쁘고 비싼 옷과 핸드백을 들고 다니니 자신의 현실과 맞지 않게 비싼 옷과 명품백을 사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남들 앞에서 명품백만 들고 다니면 뭐라도 되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인지 정말 답답하고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들어 자신의 현실과 맞지 않게 과소비를 하는 부류들이 많아진 이유는 SNS의 폐해가 아닐까 싶다. 남들이 비싼 차, 비싼 옷, 비싼 핸드백을 갖고 있으니 현실감각이 사라진 채 자신을 뽐내기 위해 무리한 소비를 하는 것이다. 빛 좋은 개살구, 속 빈 강정이 이런 부류를 뜻하는게 아닐까.
또 한가지는 살과의 전쟁이다. 자신의 몸매는 생각하지 않은채 항상 입을 옷이 없다며 옷을 탓한다. 옷이 무슨 죄인가. 그 핑계로 항시 옷을 사서 과지출을 한다. 또한, 살은 빼고 싶은데 맛있는 음식은 잔뜩 먹고 싶고 운동은 하기 싫다. 이런 사람은 또 살을 뺀다고 다이어트 약이니 다이어트 음식이니 하면서 또 과소비를 한다. 돈써서 살찌고, 살뺀다고 또 돈을 쓴다.
실제로 자기객관화가 잘된 사람은 음식 절제를 잘하고, 또한 자신에게 필요한 옷만 정해서 산다. 체중관리가 잘되어있고, 어떤 옷을 입어도 핏이 살기 때문에 옷이 많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자기 몸이 멋진 옷걸이이니 옷 핑계가 줄어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무리한 투자 및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 또한, 한탕만을 바라며, 자신의 자산과 지식의 한계치를 모른채 주식에 투자를 한다. 말이 투자지 도박과 다를 바가 없다. 결과는 당연히 나락이다. 남들의 혀에 놀아나서 자신의 소중한 돈을 아무 생각없이 버리는 것과 같다. 이 결과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돌아온다. 한 가정의 행복을 망가뜨리는 일이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기객관화가 잘되어 있어야 인생을 현명하게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 자기객관화가 안되어있다는 뜻은 무지함과 일맥상통한다. 세상을 공부하고 사회를 공부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공부해야 인생을 현명하게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